우리는 흔히 발주기 문이 덜컥 열리는 순간,
말이 앞다리를 먼저 번쩍 들고 튀어 나간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는 동물의 역학적 구조를 오해한 것이다.
출발의 진정한 시동(始動)은
말의 강력한 하체,
즉 뒷다리에서 시작된다.
비유하자면 개구리의 점프 원리와 완벽히 일치한다.
개구리가 지면을 박차고 멀리 뛰기 위해
뒷다리를 몸 안쪽으로 잔뜩 웅크려 힘을 응축하듯,
말 역시 게이트 문이 닫힌 상태에서
뒷다리에 체중을 싣고 지면을 강하게 압착하며 대기한다.
문이 열리는 찰나,
이 응축된 거대한 에너지가 뒷다리를 통해
지면을 폭발적으로 밀어낸다.
이 하체의 도약 힘에 밀려
말의 앞다리가 자연스럽게 수직으로 들리며
전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이 찰나의 순간,
인마일체의 가장 정밀한 호흡이 요구된다.
말이 뒷다리를 차고 일어나며 발생하는
거대한 물리적 반동에 맞춰,
기수 역시 한 치의 오차 없이
체중을 앞쪽으로 과감하게 던져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추진력이
100% 온전한 전방 속도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게이트를 빠져나온 직후는
전체 경주를 통틀어 가장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열두 마리의 말이 동시에
조금이라도 달리는 거리를 줄이기 위해,
안쪽의 유리한 자리(인코스)를 차지하려
본능적으로 좁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출발 직후의 대형 충돌과
연쇄 낙마 사고를 물리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한국마사회는 지난 2001년 7월 1일부터
‘출발 후 100m 이내 진로 변경 금지’라는
엄격한 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과도한 초기 자리싸움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규정은,
초기 100m 구간에서는 무조건 직선 주행을 유지하도록 강제하여
인마의 안전과 레이스의 공정성을 확보한다.
출발은 단순히 경주가 시작되는
시간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발주기 안에서의 고도의 심리적 통제,
뒷다리에 응축된 폭발적인 도약 메커니즘,
그리고 최초 100m 구간의 엄격한 규정 속에서 벌어지는
기수들의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까지.
이 모든 것이 응축된
0.1초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그 경주의 지배권을 쥘 수 있다.